기획자의 변_삼백만원 프로젝트를 마치고

뚝방지역의 쉼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한지 석달여가 되어서야 비로소 프로젝트가 끝났다. 작가 중심으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애초에 기획자의 역할이 프로젝트에 대한 컨설턴트 혹은 서포터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작가를 옆에서 성원해주는 역할 외에 특별히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포지션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우면동 뚝방지역이 내가 매일의 생활을 통해서 피부로 체험하는 지역이 아니라 내겐 쉽게 친근해지기 어려운 무척 낯선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문제를 미술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개념에 대해 내 나름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어쩌면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 시점에 내가 이해하고 있는 개념 자체도 실제 뚝방의 지역민들이 경험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에 사실 기획자로서 하나의 기획에 대해 가져야할 진정성을 따지자면, 이 프로젝트에서 기획자로서의 내 역할은 여러가지로 미진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기획자가 한팀이 되어 ‘뚝방’이라는 팀이름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에 내 나름대로 참여하기 위한 방식으로 했던 여러가지 잡무들, 즉 노가다하는 작가 도와주기(실제로 도와주는 척하기 외에 큰 역할은 못했다), 음료수 사다 나르기, 작업과정 사진찍기, 블로그에 자료 올리기 등의 일들 덕에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뚝방지역에 많이 친숙해질 수 있었고 그곳에 당면한 문제점과 어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실상 지역의 문제에 대하여 다른 어떤 도구가 아닌, ‘미술’로 등을 긁으라는 임무는 애초에는 그렇게 어려운 과제로 체감되지 않았었다. 해외여행 중에 보았던 여러가지 공공작업의 매혹적인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면서 미술을 통한 사회적 소통에 대한 평소의 관심을 현실화시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에까지 머리 속 진도가 나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것은 언제나 자명한 일이지만, 공공미술에 대한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대체로 어떤 사이트를 정해서 사이트 스페시픽(site-specific)한 벽화를 그리거나 낡은 공공시설에 색칠을 하거나 하면 되겠지라는 일종의 환경미화 차원의 피상적 생각만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맨 처음 부딪힌 벽은 이 프로젝트의 임무 중 하나였던 ‘지역성’의 문제였다. 작가가 거주하거나 자주 생활하는 특정 지역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포인트가 ‘지역의 문제를 미술로 해결해본다’는 것이었기에 지역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에서 출발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미술을 통해 어떤 대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첫번째로 요구되는 것이 대상에 대한 이해와 겸손한 태도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뚝방지역에 대해서 통계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피부로 느껴지는 문제점을 포착하는 것은 내가 그 지역민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뚝방지역에 대한 나의 시선은 그 지역민으로서가 아니라 외부인으로서였고, ‘아마도 그러리라 짐작되는’ 추론들을 통해서만 그분들의 어려움을 예측할 수 있었을 뿐이다. 결국 나는 뚝방지역에 작업실을 가지고 드나들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서 이 지역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는데, 그의 시선 역시도 십수년간 그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몸으로 투쟁해온 토착민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 팀이 겪었던 어려움들은 근본적으로는 아마도 이러한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여러 번의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그러한 한계들을 체험하고, 애초의 아이디어를 그 지역에 걸맞는 방식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던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 자신에게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실제로 뚝방지역에서 어떻게 ‘등긁기’를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뚝방 지역에 쉼터를 만들어주고 싶은 소박한 뜻이 애초에 ‘마을회관’ 건립이라는, 언뜻 듣기에 너무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된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뚝방 지역과 같은 경우 생존권의 문제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절박한 곳이기 때문에 ‘미술’이라는 입장을 설득하기 매우 어려운 조건에 있었다. 사실 미술을 생산적인 활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들은 ‘미술계’라는 특수한 세계를 벗어난 공간 어디에나 산재해있다. 미술활동을 ‘공상하는 일’, ‘고급 취미활동’으로 생각하면서 작업실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부르조아적인 소일거리로 보는 시선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미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할 일 없어서 빈둥거리는 그룹으로 보여지는 것인데, 그것은 한편으로 미술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 소통되지 못한 채 미술계라는 특정 집단 안에서만 회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떤 지역에 미술행위를 실천한다는 것 자체가 한 마디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의 무의미한 짓거리’로 오해되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기에 뚝방 지역과 같이 생존권의 문제가 좀더 시급한 지역을 위한 미술이라면, 미술이 삶과 좀더 끈끈하게 연결되는 형태로 조직될 필요가 있었다. 이 때문에 뚝방 지역에서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지역민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고려하는 데서 출발해야만 했다. 뚝방지역은 집을 짓도록 허가되어 있지 않은 땅에 수십년 살아온 주민들이 만들어온 터전이다. 철거 예상 지역에 살고 있다는 조건 자체가 실상 언제나 생존권의 위협을 받는 절박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곳에 생존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휴식’이라던가 ‘놀이’에 관련된 시설들은 전무하다. 이 곳을 방문할 때마다 이 지역 어른들이 양채천이 내려다보이는 뚝방 길에 선 채로 담배를 피우거나 얘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눌만한 마땅한 휴식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은 잦은 물난리나 구청의 감사 등의 문제로 인해서 마을 주민들끼리의 상호협조가 필요한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지만, 서너명이 모여 앉아 마을 대소사를 의논할 공적 장소가 전무한 실정이었기에 마을회관의 필요성을 지역의 여러 어른들께서 이미 느끼고 계셨던 터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마을회관의 형식을 빌어서 지역민들이 쉴 수 있는 쉼터의 공간을 만들고자 계획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을회관 건립을 위해 간이식 구조를 세우고 그 안에 벽화 등의 형식으로 미적인 요소를 첨가하고자 하는 계획은 뚝방지역 반장님의 적극적인 협조로 처음에는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 공공의 목적으로 무언가를 설치한다거나 그린다는 행위가 작가가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업실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작업을 완성시키는 철저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의 생산과 공공적인 영역에서 그것을 실행시키는 것은 상상력을 외계로 투사시킨다는 입장에서는 결국 같은 맥락이지만,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 거쳐야할 과정은 매우 다른 것이었다. 크리스토(J. Christo)가 하나의 공공 프로젝트를 위해서 수년간 공적인 서류와 행정적 절차를 거쳐서 주정부 혹은 시의 허락을 얻어내고, 스폰서를 섭외하고, 지역민들을 설득하고, 지역의 인력을 고용하는 일련의 ‘사회적 간섭’ 과정을 거친다는 것, 그 전체적 프로세스 자체가 크리스토 작업의 일부라는 것을 익히 알고있는 바였지만, 실질적으로 그 과정의 첫단계 조차도 우리에게는 낯설고 생경하고 불편한 일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구청의 허가문제였다. 무허가 지역 내에 어떠한 건축물 형태를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구청의 입장에서는 공식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구청으로부터 무허가 건물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수시로 있는 지역에 살고 있는 이 지역민들은 약자의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에, 구청과의 관계나 땅에 대한 권리에 관해 문제의 소지를 피하고자 할 수 밖에 없고 구청의 움직임에 대해 언제나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부 주민들은 뚝방 지역에 무언가 새로운 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고, 구청에서도 허가가 나지 않은 채 시간만 계속 지나갔다. 결국 시공일까지 잡힌 상태에서 마을회관 건립은 백지화되었고,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뚝방지역에 얽혀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불가능한 일들을 포기하고, 가능한 범주 안에서 쉼터의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사실 이 과정 중에서 공공 프로젝트의 프로세스가 가지는 어려움을 가장 많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나름대로 얻은 결실이 있다면, 공공미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문제 자체를 작업 실현을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뚝방 지역은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가 응집되어 있는 곳이었고, 이곳에 미술적인 행위를 시도하면서 우리가 경험한 과정들 자체가 공공미술 작업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교회 앞의 공터를 이용하여 뚝방지역 주민을 위한 작은 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건물의 형태를 피하기 위해서 작가에 의해 도출된 아이디어였는데, 용도의 면에서 마을회관 만큼의 실용성을 띠지는 못하지만, 애초에 이 프로젝트의 초점이었던 ‘쉼’이라는 개념에는 보다 적합한 형태라고 생각되었다. 블로그에 공개된 과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공원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수월치는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주민들간의 갈등이 불씨가 되어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고, 수차례 폭우로 인해 며칠씩 지연되는 일이 허다했다. 프로젝트의 성격을 바꾸었음에도 여전히 구청의 감사를 우려하는 시선들도 있었다. 그래도 결국엔 다행스럽게도 큰 문제없이 쉼터가 완성되었다. 이 공원은 무언가 주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구성되었는데, 뚝방 지역에서 유일하게 알록달록 색깔이 입혀진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이상기온으로 찌는 듯 더웠던 9월 내내 철근 세우기, 지붕 설치, 돌 나르기, 돌깔기 등등 무수한 노가다를 직접했던 작가의 작업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우리가 아트 팀인지 공사 팀인지 헷갈리던 순간도 있었지만, 작업의 마지막 과정에서 쉼터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가의 채색과 드로잉 작업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의 위치가 노가다에서 아티스트로 변모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쉼터가 드디어 뚝방 주민들을 위한 하나의 미술작업으로서 완성된 것이다. 완성된 작은 공원은 그 자체로는 소박하기 그지 없지만,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 색 그물망들을 덮어놓은 뚝방지역의 어두운 지붕들 사이에서 마치 동화 속 장면들처럼 화사하게 보인다. 공원은 널찍한 평상 세개와 야외용 테이블 의자, 햇빛이 반쯤 투과되는 선라이트 지붕, 리폼한 교회 의자, 작은 화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을 느슨하게 만드는 유원지의 여유, 저렴한 재료들이 만들어내는 가벼움, 볕 잘드는 공간의 양지바름, 작가의 작업이 애초에 가지고 있는 특유의 펑키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완성된 공간이다.

공원의 한 가운데에는 교회에서 쓰다버린 의자에 천을 씌위 리폼하고 드로잉한, 일명 ‘희망의자’ 작업이 야광색으로 빛나고 있다. 날씨 화창한 오후에 이 의자에 앉아서 반투명 지붕위로 투과되는 색색의 드로잉과 그 너머로 무한히 펼쳐진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자니 무언가 즐거운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뚝방 지역 주민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단 일초만이라도, 희망의자에 앉아서 이와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아마도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뚝방지역에 희망의 느낌을 불어넣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그 순간만큼은 구청의 통제나 주민간의 갈등이나 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과정의 지난함이나 어려움 모두를 통과하여 누군가에게 전달된 것일테니 말이다. 이런 식의 소통이 정말로 정말로 가능하다면, 공공미술을 위한 노력은 우리 팀이 겪었던 행정적 미숙함, 일의 순서에 대한 무지, 지역의 문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 지역민과의 소통 부족 등 수많은 미진함을 뒤로하고, 우리를 석달이상 진정 괴롭혔던 ‘미술로 등긁기’라는 임무를 또 한번 시도해볼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한다. 이 쉼터가 또다시 구청의 압력으로 철거 위기에 놓여지게 될지라도 말이다. ■ 이은주




by label-k | 2005/10/15 01:19 | 삼백만원 프로젝트 | 트랙백 | 덧글(2)
쉼터 완성
드디어 뚝방 주민들을 위한 쉼터가 완성되었다.














by label-k | 2005/09/30 14:19 | 삼백만원 프로젝트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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